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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역량 아젠다(Core Competence Agenda)

회사마다 “우리가 잘 하는 것”은 대개 알고 있습니다. 막히는 지점은 그 다음 질문입니다. “그 역량으로 10년 뒤에 어느 시장에서 돈을 벌 것인가?”, “지금 가진 역량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새로 만들어야 하는가?” 두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신사업 아이디어만 쌓이면 투자는 흩어지고 본업은 서서히 약해집니다. 핵심 역량 아젠다(Core Competence Agenda)는 이 두 질문에 답하도록 만든 프레임워크입니다.

사진 필름 회사로 성장한 후지필름은 2000년 무렵 세계 사진 필름 수요가 정점을 찍고 빠르게 줄어드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후지필름은 필름을 만들며 쌓은 기술을 화장품, 의료영상, 의약품 사업으로 옮겼습니다. Core Competence Agenda는 바로 이런 판단을 도와줍니다. “어떤 역량을 어느 시장에 쓸 것인가?”를 네 칸의 지도로 정리해주는 프레임워크입니다. Core Competence Agenda의 개념, 실제 기업 사례, 분류할 때 자주 틀리는 지점, 실무 적용 순서까지 차례로 정리하겠습니다.

목차

Core Competence Agenda란?

Core Competence Agenda는 게리 해멀(Gary Hamel)과 C. K. 프라할라드(C.K. Prahalad)가 1994년 Competing for the Future(미래를 위한 경쟁)에서 제시한 2×2 매트릭스입니다. 사실 이들은 1990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 The Core Competence of the Corporation에서 핵심 역량의 개념을 먼저 발표하였습니다. 이때 제안한 핵심 역량은 여러 제품과 사업을 동시에 떠받치는 조지그이 기술과 노하우 묶음이었습니다.

1990년 논문에서는 핵심 역량을 가려내는 조건을 세 가지로 제시합니다. 여러 시장에 진출할 길을 열어 줄 수 있는가? 고객이 느끼는 제품의 가치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가? 경쟁사가 따라하기 어려운 조건인가? 이 조건과 관련한 자사의 핵심 역량을 찾는 방법은 핵심 역량 분석에서 자세히 다룬적 있습니다. Core Competence Agenda는 그 다음 단계입니다. 찾아낸 역량을 어디에 쓰고 어떤 역량을 새로 만들지 정합니다.

매트릭스의 두 축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핵심 역량 축: 기존 역량 vs 신규 역량
  • 시장 축: 기존 시장 vs 신규 시장

축만 보면 단순하지만 이 툴이 붙는 대상은 제품이 아니라 역량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무엇을 팔까?” 보다 “무엇을 잘 하게 할까?”를 먼저 정하고 그 역량이 열어 줄 시장을 찾는 순서입니다.

Core Competence Agenda

2×2 매트릭스에는 칸마다 경영진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하나씩 붙어있습니다.

Agenda핵심 역량시장질문대표 사례
Fill in the Blanks
(빈 칸 채우기)
기존기존이미 가진 역량을 더 잘 쓰면 지금 시장에서 위치를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나?애플 M1칩과 Mac
Premier Plus 10
(10년 뒤에도 1등)
신규기존10년 뒤에도 이 시자에서 선두이려면 지금 어떤 새로운 역량을 만들어야 하나?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White Spaces
(빈 공간)
기존신규지금 역량을 다시 배치하거나 조합하면 어떤 새 시장에 들어갈 수 있나?아마존 AWS
Mega Opportunities
(거대 기회)
신규신규미래의 가장 큰 시장에 들어가려면 어떤 새 역량이 필요한가?삼성바이오로직스
Core Competence Agenda

Fill in the blanks

기존 역량으로 기존 시장의 빈 틈을 메우는 아젠다입니다. 해멀과 프라할라드는 어떤 역량이 어떤 제품 시자을 떠받치는지 지도를 그려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회사 다른 곳에 있는 역량을 끌어와 특정 시장의 위치를 강화할 기회가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새 역량을 만드느 것이 아니라 사내에 이미 있는 역량을 옮겨 쓰는 것이 핵심입니다.

애플은 2020년 1월 10일 Mac용 칩 M1을 발표했습니다. 애플은 발표문에서 M1을 “Mac 전용으로 설계한 첫 칩”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하드웨어 기술 담당 수석 부사장 조니 스루지(Johny Srouji)는 M1이 iPhone, iPad, Apple Watch 용 칩을 10년 넘게 설계해 온 경험 위에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모바일 기기에서 키운 칩 설계 역량(기존 역량)을 이미 수십 년 경쟁해온 PC 시장의 Mac(기존 시장)에 들여온 것입니다. Mac은 2006년부터 인텔 칩을 써왔는데, 그 자리를 애플은 외부 부품 대신 사내 역량으로 채웠습니다.

Premier Plus 10

지금 시장을 지키고 넓히기 위해 새 역량을 만드는 아젠다입니다. 지금 1등이어도 10년 뒤 경쟁의 기준이 바뀌면 지금의 역량으로는 1등을 지킬 수 없다는 문제의식입니다.

넷플릭스는 2013년 2월 1일 오리지널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첫 시즌 13편을 한꺼번에 공개했습니다. 2012년 노르웨이 방송사와 함께 만든 릴리해머가 먼저 나오긴 했습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대규모로 투자한 첫 독점 오리지널은 하우스 오브 카드입니다. 그 전까지 넷플릭스의 역량은 남이 만든 영화와 드라마의 판권을 사와서 스트리밍으로 유통하는 데 있었습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제작사 MRC(Media Rights Capital)가 만들고 넷플릭스가 두 시즌을 미리 사들이는 방식이었습니다. 시청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품을 고르고 기획 단계부터 투자하는 역량(신규 역량)을 이 때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는 직접 제작까지 넓혔습니다. 목적은 할리우드 스튜디오 콘텐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같은 구독자 시장(기존 시장)에서 다른 서비스와 차별화하는 것이었습니다.

White Spaces

기존 역량을 새 시장에 다시 배치하는 아젠다입니다. 해멀과 프라할라드가 말하는 “빈 공간”은 기존 사업부들 사이에 아무도 맡지 않은 기회를 가리킵니다. 사업부 단위로만 생각하면 보이지 않고 역량 단위로 회사를 볼 때 보입니다.

아마존은 AWS 공식 소개 당시 아마존닷컴을 운영하던 초기에 IT 인프라를 준비하고 관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비싼지 직접 겪었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6년 봄 AWS를 출범했다고 합니다. 2006년 3월 저장 서비스인 S3, 8월 컴퓨팅 서비스 EC2 베타가 나왔습니다. 대규모 온라인 서비스를 돌리며 쌓은 인프라 운영 역량(기존 역량)을 외부 개발자와 기업에 파는 클라우드 시장(신규 시장)으로 옮긴 것입니다.

Mega Opportunities

새 역량을 만들어 새 시장에 들어가는 아젠다입니다. 성공하면 회사의 기둥이 되지만 역량과 시장 모두 경험이 없어서 위험이 가장 큽니다. 그래서 이 칸에서는 혼자 역량을 키우기 보다 제휴나 인수로 이미 역량을 가진 회사를 끌어들이는 방식이 자주 쓰입니다.

삼성은 2010년 바이오를 신규 사업으로 선정하고 2011년 4월 인천 송도에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했습니다. 사업 모델은 다른 제약사의 바이오 의약품을 대신 생산하는 위탁생산(CMO, 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이었지만 이후 개발까지 맡는 위탁개발생산(CDMO)으로 넓혔습니다. 설립 과정에서는 임상시험 수탁 기업 퀸타일즈(Quintiles)와 손잡았습니다. 2025년에는 연결 영업이익 2조 692억원을 내며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영업이익 2조원을 넘었습니다. 전자와 금융 중심이던 그룹에 바이오 의약품 생산 역량(신규 역량)과 글로벌 제약사를 고객으로 하는 시장(신규 시장)이 없었으니 전형적인 Mega Opportunities입니다.

사분면 분류에서 자주 나오는 오류

사례를 고르며 검증해 보면 분류가 생각보다 자주 헷갈립니다.

제품 확장과 역량 확장의 혼돈

“아이폰을 만들던 회사가 시계를 만들었다.”는 제품 기준의 설명입니다. Core Competence Agenda는 역량 기준으로 칸을 정합니다. 같은 신제품이라도 기존 역량을 옮겨 쓴 것인지, 새 역량을 만든 것인지에 따라 2×2 매트릭스 내 칸이 달라집니다. 분류를 하기 전에 “이 사업을 위해 새로 배워야 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한 줄로 적어 보면 명확해집니다.

시점을 정하지 않음

AWS의 인프라 서비스는 2006년 아마존에게 새 시장이었지만 지금은 아마존의 가장 중요한 본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사업도 언제를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칸이 바뀝니다. 매트릭스에 적용할 때마다 “진출 결정 시점” 기준인지 “현재” 기준인지 정해 두어야 합니다. 경계가 애매한 사례도 있습니다. AWS의 핵심인 인프라 운영 역량은 기존 것이었지만 외부 기업에 종량제로 팔고 영업하는 역량은 새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럴 때는 “White Spaces 이지만 Mega Opportunities에 가깝다” 처럼 경계를 함께 적어 두는 편도 좋습니다.

일부 역량이 겹친다고 기존 역량으로 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반도체 공장을 빠르게 짓고 운영하던 경험이 있으니 기존 역량”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대규모 설비를 빠르게 짓는 능력은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포를 배양해 의약품을 만드는 공정, 글로벌 의약품 품질 규제 대응, 제약사 영업은 삼성그룹 안에 없던 역량이었고 합작으로 들어왔습니다. 일부 역량이 겹친다고 기존 역량으로 분류하면 필요한 투자 규모를 과소평가하게 됩니다.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역량이 새것인지를 판단기준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Core Competence Agenda 실전 적용 5단계

  1. 역량과 제품을 연결한 지도 그리기: 회사의 핵심 역량 후보를 적고 각 역량이 어떤 제품과 시장을 받쳐주는지 선으로 잇습니다. 여러 제품에 동시에 선이 걸리는 역량이 핵심 역량일 가능성이 큽니다.
  2. 네 칸에 기회 올리기: 검토 중인 사업 기회를 역량(기존/신규)과 시장(기존/신규) 기준으로 네 칸에 배치합니다. 분류 기준 시점도 함께 적습니다.
  3. 칸마다 역량 확보 방식 정하기: Fill in the Blanks는 사내 이전, Premier Plus 10은 내부 육성이나 인재 영입, White Spaces는 역량 재조합, Mega Opportunities는 제휴나 인수가 주로 쓰입니다.
  4. 시간 축 연결하기: 10년 뒤 어떤 시장에 있을지 그려본 뒤 거꾸로 지금 만들어야 할 역량을 정합니다. 미래 시장을 여러 갈래로 그려 보는 작업은 시나리오 분석이 도움됩니다.
  5. 정기적으로 다시 분석하기: 시장과 역량은 계속 바뀌므로 1년에 한 번은 분석을 해봅니다. 전사 전략 수립 주기에 맞춰 함께 점검하면 따로 일정을 잡지 않아도 됩니다.

[사례 분석] 후지필름

후지필름은 Core Competence Agenda 프레임워크에서 자주 언급하는 사례입니다. 후지필름은 사진 필름 사업이 절정인 2000년 무렵 이후 매출이 급격히 줄었습니다. 본업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필름 회사”가 아니라 “필름을 만들며 쌓은 역량을 가진 회사”로 변화합니다.

Agenda전략 방향역량진입 시장
Fill in the Blanks인스탁스(Instax) 즉석 카메라와 필름사진 화학, 필름 제조 (기존)사진 (기존)
White Spaces아스타리프트(ASTALIFT) 화장품콜라겐 연구, 항산화, 나노 기술 (기존)화장품 (신규)
Premier Plus 10히차티 영상 진단 사업 인수CT, MRI (신규)의료영상 (기존)
Mega Opportunities도야마화학 인수, 바이오 위탁 생산 진출신약 개발, 바이오 의약품 생산 (신규)의약품 (신규)
후지필름

Fill tn the blanks

인스탁스는 필름 위기보다 앞선 1998년에 나온 즉석카메라 브랜드입니다.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이 사진 시장을 가져간 뒤에도 “바로 출력할 수 있는 사진”이라는 수요는 남아있었습니다. 후지필름은 필름 제조 역량으로 이 공백을 매꿨습니다. 후지필름은 2025년 4월 인스탁스 카메라와 스마트폰 프린터 누적 판매가 1억 대를 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새 역량도 새 시장도 없이 기존 역량을 기존 사진 시장에 다시 쓴 Fill in the blanks입니다.

White Spaces

후지필름은 2006년 9월 화장품 시장에 진출해서 2007년 9월 아스타리프트를 출시했습니다. 필름과 피부는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실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사진 필름의 주 원료가 콜라겐이고 사진이 자외선 때문에 바래는 산화 현상은 피부 노화의 원인과 같습니다. 후지필름은 아스타리프트 개발에 콜라겐 연구, 빛 분석과 제어, 항산화, 독자 나노 기술이라는 네 가지 필름 기술을 썼습니다. 기존 역량을 새 시장에 옮긴 White Spaces입니다.

Permier Plus 10

후지필름은 엑스레이 필름 시절부터 의료영상 시장에 있었습니다. 또한 디지털 엑스레이, 의료영상 저장 전송 시스템(PACS), 내시경 사업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병원 영상 진단의 큰 축인 CT와 MRI는 약했습니다. 후지필름은 2021년 3월 약 1,790억엔에 히타치의 영상 진단 사업 인수를 마치고 CT, MRI, 초음파 제품군을 갖게 되었습니다. 시장은 그대로이고 역량을 새로 들인 Premier Plus 10입니다.

Mega Opportunities

후지필름은 2008년 다이쇼제약과 함께 도야마화학을 인수해서 연결 자회사로 편입하며 의약품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2011년에는 미국 머크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 거점인 영국 MSD Biologics와 미국 Diosynth ATP를 인수해 바이오 의약품 위탁 개발 생산에도 진출했습니다. 신약 개발과 비이오 의약품 생산은 필름 회사에 없던 역량이었고 그래서 후지필름은 직접 키우기보다 인수를 택했습니다. Mega Opportunities 진입 방식입니다.

후지필름 사례에서 배울 점은 칸마다 다른 역량 확보 방식입니다. 기존 역량이 통하는 칸(인스탁스, 아스타리프트)은 사내 기술로 진입 하고, 새 역량이 필요한 칸(의료영상, 의약품)은 인수로 진입했습니다. 다만 후지필름은 의약품 진출에도 필름을 만들며 쌓은 화학 기술을 활용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의약품 사업을 White Spaces로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 글은 신약 개발과 의약품 규제 대응이라는 핵심 역량을 인수로 들여왔다는 점에서 Mega Opportunities로 분류했습니다.

Core Competence Agenda로 다음 10년 준비하기

Core Competence Agenda는 “신사업을 하자”는 말을 “어떤 역량을 어느 시장에 쓸지”라는 구체적인 선택으로 바꿔준다는 데 있습니다.

  • 우리 회사의 핵심 역량 후보를 다섯 개 이내로 떠올려보고 각각 어떤 제품을 받치고 있는지 구조화 해보세요.
  • 지금 검토 중인 신사업 아이디어를 네 칸에 올려 보세요. 한 칸에 몰려 있다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 Premier Plus 10 칸이 비어 있다면 위험 신호입니다. 10년 뒤 본업을 지킬 새 역량을 아무도 준비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 Mega Opportunities 칸의 아이디어에는 역량을 직접 키울 지, 제휴나 인수로 들여올지를 고민해보세요.
  • 각 칸의 우선순위를 정했다면 실행을 추적할 지표를 붙이세요. 지표 설계는 KPI 등을 참고하면 됩니다.